1.
2015년 1월. 청와대 기자회견.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을 중심으로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겠다. 이 4대 부문은 우리 경제·사회의 핵심 분야이자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기둥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 경제·사회의 비효율성과 경쟁력 저하의 근본원인으로 작용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신을 초래해 왔다”
‘비효율성’,’경쟁력 저하’라는 결과를 낳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입니다. 최소한 금융만 놓고 보면 청와대나 최경환 장관은 금융회사의 잘못을 탓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잘되면 ‘내탓’이고 잘못되면 ‘네탓’이라는 식입니다.
금융부문을 놓고 나오는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고령화, 저성장이 화두를 던진 것도 몇 년전이고 자본시장개혁을 내놓은지도 오래입니다. 그러면 금융감독기관이 자본시장개혁을 언제부터 고민했는지 살펴보죠. 2002년 금융감독연구에 실린 글입니다. 지금부터 13년전입니다.
위의 글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2014년 금융위원회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방안과 맥이 이어저 있습니다. 그러면 의문이 듭니다. 지난 13년동안 누구의 잘못으로 한국의 금융산업이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환자가 있습니다. 환자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심각한지 모릅니다. 옛날부터 해왔던 습관대로 그대로 삽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압니다. 결과도 압니다. 그래서 처방을 합니다. 2004,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이런저런 처방을 합니다. 환자는 환자대로 병이 깊어가고, 의사는 여전히 환자를 자신의 수술대위에서 이리저리 요리합니다.
환자가 문제인가요, 의사가 문제인가요?
의사가 “치료법을 달리하면 이번에는 치료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꼴이 지금 금융개혁입니다. 환자는 “내가 내 병은 잘 아니까 수술대위에서 내려가게 해줘. 그리고 내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줘”, 이것이 금융회사들이 요구입니다. 두가지 방향 모두 노림수가 뻔합니다.
2.
새벽에 읽은 증권사를 망하게 놔둬라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반만 공감을 하는 부분입니다.
투자자가 손실을 스스로 책임지도록 요구하고, 증권사가 정크본드 같은 상품을 만들거나 장외파생상품을 대규모로 거래하다가 망하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 그런 혁신이야말로 자본시장 발전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와 투자자 손실을 헷갈립니다. 투자자가 생각하는 보호는 투자 손실의 보상입니다. 투자 손실을 보존하는 것은 투자자 보호가 아닙니다. 흔히 불완전판매라고 하는 투자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투자자 보호입니다. 그래서 앞 부분은 공감을 하지만 뒷부분은 “그럴까?”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규제를 완화하면 증권회사가 알아서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을 것이다, 이 예측대로 일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보신주의가 넘치는 모습도 예측중 하나로 보입니다.
칼럼의 제목처럼 ‘증권사가 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의 출발은 진입 규제의 완화가 아닐까 합니다. 경쟁을 전가의 보도로 생각하면서 금융부분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금융소비자 보호와 경제에 대한 영향을 탓할 듯 합니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진입규제가 아니더라도 할 방법이 많습니다. 경제가 문제라면 규모에 따른 다양한 제도를 만들면 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금융 정책은 대마(大馬) 만들기였습니다. 은행들간의 합종연횡을 유도하여 큰 은행을 만들고자 한 메가뱅크, 자기자본금을 늘려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종합금융투자회사와 같은 정책들입니다. 그런데 금융서비스가 좋아졌다는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핀테크도 이런 틈을 비집고 등장한 것입니다. 소비자, 투자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정책적 방향이 아닐까요? 지불결제뿐 아니라 금융 각 부문에서 진입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 핀테크를 육성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동종(同種)이 아니라 이종(異種) 경쟁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