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산이 있다

1.
jTBC의 썰전. 이철희씨와 강용석씨가 ‘우주인 이소연씨’를 두고 썰을 풉니다. 이철희씨는 구조적인 문제에 촛점을 두고 강용석씨는 개인적인 가치관을 이야기합니다.

“이소연 씨는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똑똑하고 체력이 되니 우주인으로 선발된 것은 맞다. 하지만 항공우주분야에 대한 비전보다는 일종의 스펙을 쌓는 차원의 도전이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우주인으로서 국가에 봉사하려는 사명감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잘못 뽑았다. 차라리 군인이나 연구원을 뽑았어야 했다”

“이소연씨를 먹튀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국가가 우주인으로써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개인으로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차이를 신문에서도 느낍니다.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가 인터뷰이에 던지는 질문을 보면 차이를 느낍니다. 조사한 적은 없지만 느낌만으로 보면 조선일보가 개인적인 성장에서 질문을 찾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아니면 이와 같은 질문이 가능한 사람을 인터뷰이로 선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말 한겨례가 만난 분은 밀양 김말해 할머니와 판사출신 사무장 이정렬씨입니다.

남편은 보도연맹, 아들은 월남전, 나는 송전탑
“변호사 사무장 되니 사건 스토리가 보이네”

반면 조선일보 주말특집 WHY?는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교장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장일현 기자의 인&아웃] “등산의 白眉(백미)는 정상 정복이지만 등산의 完成은 살아 돌아오는 것”

2.
이용대 교장님의 인터뷰는 산에서 배운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 자신을 알라’

―산에 오르는 사람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마음가짐은 어떤 것인가.

“자기 자신을, 자기 능력을 알아야 한다. 산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정말 큰일 난다. 프로도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국내 산악인들이 해수면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제로(0)에서 8848m까지 무산소 등반을 했다. 그중 후배 산악인이 고산 등반 능력이 탁월한 선배를 따라 산소마스크 쓰지 않고 올라가다 마지막 캠프에서 사망했다. 남을 따라 하면 절대 안 된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성공보다 관계를 우선에 두어야’.

“정상을 정복하는 건 등산의 백미(白眉)이다. 하지만 등산의 완성이 뭔지 아는가. 바로 출발한 그곳에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곳 말이다. 살아 돌아오는 게 자랑이어야 한다.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할 뿐이다.”

셋째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등산이란 산에 나만의 선을 만드는 것이다. 산에 오른다는 건 창조적 행위이다. 등산의 길이란 산에 오르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것이다.”

―요즘 알피니즘이 순수성을 다소나마 회복해 가고 있다고 했는데.

“228년을 이어온 알피니즘의 역사는 피크 헌팅(정상 정복)을 목표로 한 ‘등정주의’에서 과정과 수단을 중요시하는 ‘등로주의’로 변천해 온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등정주의는 8000m 이상 14봉 정복으로 끝이 났다. 이젠 창조적인 등반을 해야 한다. 산에 자기만의 길을 만들라는 것이다. 정상은 하나지만 그곳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남이 수십년 전 만들어 놓은 루트로 가지 말고 보다 어렵고 다양한 길로 오르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등반이다. 아마추어도 나만의 길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산을 찾아가 보라. 산이 달라 보일 것이다.”

넷째 ‘나의 삶을 기록하여라’

―책과 글이 등산에 왜 중요한가.

“산악인은 글쓰기와 책읽기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들을 오르고도 그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우린 행위만 있고 기록이 없다. 공부들을 워낙 안 한다. 메스너는 무려 50권의 책을 썼다. 등반 선진국엔 책을 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산악인은 자기가 이 산에 왜 오르는지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견강부회로 정리하였지만 인터뷰를 읽으면서 삶의 깊이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투박하게 정리했습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때문”이라고 답을 합니다. 등산이 가지는 매력을 멋지게 표현합니다.

―등산이란 수평의 세계에 살던 사람이 수직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무엇보다 사람들이 순수해진다. 산에는 출세도 없고 돈도 없다. 등산은 무상의 행위이다. 수평 세계에 있을 때 얽매여 있던 모든 굴레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등산은 종교이자 탈출이다.”

저도 비슷한 의견이지만 다른 이유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직 걸어야 합니다. 그 시간 등산은 무념의 시간을 줍니다. 자전거도 비슷합니다. 하나의 심장, 두 발로 자연에 도전하는 운동입니다.

등산은 정상을 향해 나만의 길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나만의 발자취를 남깁니다.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입니다. 순간의 선택. 오래 전 고미영씨의 죽음을 접하고 쓴 글입니다.

선택속에 담긴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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