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솔직히 나무에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작나무는 주말판 신문의 기사에 처음 접하였습니다. 자작나무가 아니라 자작나무 1만 2천그루를 심은 분의 이야기가 감동이었습니다.
20년은 길어도 20년을 결정한 시간은 하루였다. 1990년 5월 초, 그는 백두산에 올랐다. 목적지는 천지였으나 시선은 길섶에서 멎었다. 주위가 온통 하양다. 아직 잎을 내지 않은 자작나무가 끝 간데없이 펼쳐졌다.
“거기서 마음이 울렸다. 자작나무는 풍족하지 않다. 가냘픈 흰색이 애잔하고 쓸쓸했다. 그때 내 모든 여행이 멈췄다. 여행이란 지금 자기에게 없는 뭔가를 찾으려는, 일종의 방황이다. 자작나무를 보는 순간, ‘내가 저걸 보려고 이렇게 돌아다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내 방황은 거기서 끝났다.”
“자작나무 숲을 가꾸며 방황은 끝났다”중에서
그러던 지난 달 과천에 있는 산악회가 사진하나를 올렸습니다. 인제 원대리에 위치한 자작나무숲입니다. 지난 토요일 정기산행 공고였습니다. 하얀 눈, 하얀 나무에 끌려서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2.
원대리에 도착하여 임도를 따라 7km쯤 오르는 넓은 계곡에 눈보다 하얀 자작나무 벌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겉은 하얗지만 속은 짙은 갈색입니다.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자작나무’라고 합니다. 맨 손으로 자작나무의 벗은 몸을 만져보았습니다. 의외였습니다. 딱딱하고 거친 질감을 예상하였지만 하얀 색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하늘하늘한 느낌이었습니다. 아기의 피부같기도 하고 나신을 들어낸 여인의 맑은 피부같기고 합니다.
[slideshow_deploy id=’15200′]
3.
안도현 시인은 ‘자작나무를 찾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대저 시인이라는 자가 그까짓 것도 모르다니 하면서
친구는 나를 호되게 후려치며 놀리기도 했지만
그래서 숲길을 가다가 어느 짖궂은 친구가 멀쑥한 백양나무를 가리키며
이게 자작나무야, 해도 나는 금방 속고 말테지만그 높고 추운 곳에 떼지어 산다는
자작나무가 끊없이 마음에 사무치는 날은
눈 내리는 닥터 지바고 상영관이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어떤 날은 도서관에서 식물도감을 뒤적여도 보았고
또 어떤 날은 백석과 예쎄닌과 숄로호프를 다시 펼쳐 보았지만
자작나무가 책 속에 있으리라 여긴 것부터 잘못이었다그래서 식솔도 생계도 조직도 헌법도 잊고
자작나무를 찾아서 훌쩍 떠나고 싶다 말했을 때
대기업의 사원 내 친구 하얀 와이셔츠는
나의 사상이 의심된다고, 저 혼자 뒤돌아 서서
속으로 이제부터 절교다, 하고 선언했을지도 모른다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연애 시절을 아프게 통과해본 사람이 삶의 바닥을 조금 알게 되는 것처럼
자작나무에 대한 그리움도 그런거라고
내가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작나무가 하얗기 때문이고
자작나무가 하얀 것은 자작나무숲에 일하는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친구여,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뭐니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
자작나무 숲에 너와 내가 한 그루 자작나무로 서서
더 큰 자작나무숲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면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감짝 놀라겠지
어라, 자작나무들이 꼭 흰옷 입은 사람 같네, 하면서
인제에 또다른 자작나무숲이 있습니다. 오태진씨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높이 800m 되는 매봉의 어깨쯤을 임도(林道)가 꼬불꼬불 휘감고 간다. 그 길 따라 10㎞ 한 바퀴를 천천히 차로 돌았다. 눈 닿는 곳마다 자작나무다. 보름 전 매달고 있던 노랑 잎들이 주변 단풍과 어우러져 알록달록 몸뻬바지 같던 풍경은 그새 무채색이 됐다. 잎을 모두 벗은 자작나무들은 잘 발라낸 생선 뼈처럼 새하얀 줄기를 드러냈다. 산등성이가 온통 흰 물감으로 그어댄 펜화(畵) 같다. 아니 자작나무들은 날카로운 펜 그 자체로 무수히 꽂혀 있다.
자작나무는 한반도에선 개마고원쯤에나 자라는 추운 나라 수종(樹種)이다. 언젠가 백두산 가는 길, 눈밭에서조차 환하게 빛나던 그 숲도 자작나무였다. 북방 사람들은 자작나무로 집을 짓고 불을 땠다. 죽은 이를 자작나무 껍질로 감싸 떠나 보냈다. 자작나무는 겉은 희지만 속은 기름을 잔뜩 머금어 검다. 기름기 때문에 ‘자작자작’ 소리 내며 잘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다. 한자 이름은 ‘흴 백(白)’ 자를 써서 백화(白樺), 백단(白?b)이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 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백석 ‘백화’).
[오태진의 길 위에서]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 순백 裸身으로 비탈에 서다중에서
조만간 또다른 자작나무의 여인을 찾아가렵니다. 새하얀 눈이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