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여의도가 여렵습니다.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진행중입니다. 사실 증권회사가 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거래하고 있는 증권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증권사 사람들의 ‘안녕’을 걱정할 정도로 제가 안녕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모든 불안의 출발은 경제입니다. 살기 힘들니까 자본시장은 활기를 못찾고 있습니다. 무엇이 선후인지 알 수 없지만 금융감독기관의 규제도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어제 친한 분이 퇴근무렵 전화를 주셨습니다. 지나가는 버스와 택시의 소음이 전화기속에서 흘러나옵니다. 퇴근길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리속으로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했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에둘러 물어보았습니다. 예상이 맞았습니다.
“계약이 끝났고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2013년 뵐 때 마다 “말뚝을 박아서 최소한 4년정도 더 회사를 다녔야 한다”고 윽박했지만 회사는 그를 버렸습니다.
이보다 두 주전 2013년을 마무리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파트너들과 송년회를 마치고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이미 바람결에 날리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십여년 피와 땀으로 일군 회사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탈한 심정으로 2013년 마지막 저녁을 보내고 계시더군요. 조건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한 저는 가끔씩 말씀드렸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여 실행하시라!”
지배주주도 아닌 경영자로써 무한책임을 지지 마시라!
직원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리고 짧지않은 시간동안 고통을 이겨준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피땀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담담한 표정이지만 눈가가 촉촉합니다. 강하지만 약한 분이라 오랜 시간 불면의 밤을 보내실 듯 합니다.
두 분 모두 50대 중반이거나 후반입니다.
2.
권력상실우울증이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 주는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회사라는 사회적 버팀목이 없어지고 날 것으로 나만 남았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굳이 권력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함께 한 것이 사라져 버리는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더구나 그냥 오지 않습니다. ‘패배’라는 사회적인 낙인도 함께 옵니다.
2007년 패배자로 낙인을 찍힌 이후 현재까지 정상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 선택한 스타트업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패배가 남긴 상처가 너무 큽니다. 패배가 남긴 상처는 경제적이기도 하고 심리적이기도 하고 인간관계이기도 합니다. 그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분이 두 분입니다. 삭만한 여의도지만 고마움을 주셨던 분입니다.
50대중반의 실직은 큽니다. 평균수명 팔십, 구십을 운운하는 요즘 오십실직은 더 큽니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시간을 놀면서 살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식들도 있습니다. 노년을 위해 쌓아놓은 것도 변변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만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지뢰를 피해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라도 무엇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나 혼자 살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아는 척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사는 것이 그건 아닙니다. 삶이 결코 홀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내가 어려울 때 손을 내주었던 누군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합니다.
안녕들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합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넘칩니다.
그렇지만 안녕해야 합니다.
젊을 때 민해경이 부른 노래말의 가사처럼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남긴 자취와 다른 그림이라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기때문입니다.
모두, 안녕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