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마철이면 고민스럽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갈 수 있지만 바퀴에 흙탕물이 튀면서 자전거뿐 아니라 배낭, 옷까지 흙투성이 됩니다. 더구나 비라도 만나면 완전 생쥐꼴로 들어와야 합니다. 작년 여름 김포갔다 오는 길에 비를 만나 온 몸이 젖어 감기걸린 생쥐꼴로 남태령을 넘었습니다. 가능하면 맑은 날 길을 나서려고 합니다.
하여, 목표를 바꿔 청계산을 도전(?)하였습니다.
과천 사람들은 청계산 나들이 하면 서울대공원 근처 응봉(매봉)을 다녀옵니다. 저는 과천에 몇십년 사는 동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울대공원 약수터를 기점으로 해서 능선을 타고 올라 매봉까지 가서 다시 사그막골로 내려옵니다. 사그막골로 내려올 때마다 관악산과 비교됩니다. 맞는지 모르지만 관악산은 뜨겁다는 느낌, 청계산은 시원하고 습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음양(陰陽)으로 말하면 청계산은 음(陰), 관악산은 양(陽)이지 않을까. 그래서 옛날 박정희시절 서울대를 관악선으로 옮겨서 불 화(火)로 데모를 다스리려 했다는 전설이….(^^)
멀리 나가면 매봉(응봉)에서 능선을 타고 가다 절고개에서 하산하여 청계사로 가는 정도입니다. 주로 석가탄실일에 불공을 드리려 갑니다. 지난 석탄일에 갔던 길이기도 합니다.
아래 지도에서 좌측 위에서 우측으로 횡단하는 빨간선이 두번에 걸쳐 다닌 길입니다. 좌측 맨 아래는 사그막골로 빠지는 길이고.
2.
이번 나들이는 좀더 멀리 갈 생각이었습니다.
원터골이나 옛골로 내려올 생각을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11일에 처음 만경대를 찾아 나섰을 때 절고개 너머는 처음 가본 길이었습니다. ‘너머’라는 말뜻이 그러하듯 새로움은 약간의 긴장을 불러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때문에 걸음걸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휴식은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남들따라서 가야 합니다.
이때부터 고생입니다. 계속 오르막이었습니다. 중간에 전망대를 만났지만 그냥 통과해서 오르니 삼거리가 나오더군요. 이 때까지 ‘헉헉헉헉……’거리며 올랐습니다. 삼거리엔 막거리를 팔았던 흔적만 있고 앞으로 가면 옛골, 왼쪽으로 가면 청계산정산인 만경대로 간다는 표말이 길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당연히 만경대로……
만경대 방향으로 길을 잡고 내려가니까 넓은 평원에 성남시에서 나온 단속차량이 늘어저 서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가 보니, 불법(?)으로 막거리를 파는 상인들은 단속하고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인데…
만경대를 오르다 중간쯤에서 석기봉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있었습니다. 잠깐 전망을 구경하고 로프를 타고 석기봉을 올랐습니다. 11일이나 18일 모두 올랐지만 역시나 시원하더군요. 600미터 정상에서 바라본 산하가 이런 느낌이면 몇천미터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요? 아마도 무언가 히말리아로 끌어 당기는 힘이 있지않을까!!
11일은 비가 오다 잠깐 갠 때 산에 올라 하얀 안개가 자옥했습니다. 반면 17일은 아주 맑았습니다. 11일엔 석기봉정상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만경대를 돌아서 옛골로 내려왔습니다. 옛골로 내려올 때 약수터 전체를 돌로 만든 곳이 기억납니다. 너무나 예쁜 약수터.(지도상 맨 우측에 있는 사진)
어젠 길을 달리해서 옛골이 아니라 마왕굴쪽으로 돌아서 헬기장쪽으로 나와습니다. 사실 처음 가본 곳이라 너무 녹음이 우거지고 습해서 놀랐습니다. 서울대공원 뒤편이 이런 곳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마왕굴도 하늘에서 물이 주욱 떨어지니까 밀림에 와있는 착각을 들게 하더군요.
응봉(매봉)으로 느꼈던 청계산은 이제 더이상 청계산이 아닙니다. 석기봉, 만경대, 마왕굴 등등 더 많은 속살을 가진 깊은 산(?)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삶의 모습이 그러하듯이 겉으로 볼 때와 진짜 살아가는 모습 혹은 속살은 다릅니다. 그래서 산을 다니며 겸손을 배우나 봅니다.
3.
마왕굴에서 빠져나와 헬기장 가는 길에 잠시 쉬었습니다. 너무나 바람이 좋아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보았습니다. 이영애 주연의 ‘봄날은 간다’나 ‘계륜미’주연의 ‘가장 먼 길(最遙遠的距離)’처럼 멋진 장비로 녹음한 소리는 아니지만.
산정상에 부는 바람, 너무나 시원했습니다. 세상살이도 이렇듯 시원하면 좋지만 사는 모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