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불황이 남긴 상처

1.
어릴 때 그저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학교에 다니면 되었습니다. 다른 것 없이 그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집안을 빛 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고 그 시절 부모님들은 그것을 당연한 의무라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의 미래를 담보로 한 희생입니다. 그렇지만 시대는 한 인간을 다른 길로 인도하였고 오늘에 이릅니다. 약 십 오년입니다. 지금도 원망의 소리를 듣는 시기입니다.

이후 내가 경제생활을 책임지면서 접한 불황은 세번입니다. 97년 IMF경제위기, 2005년 증권산업위기, 2008년 금융위기. 불황은 단지 경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고 사회의 중요한 영역이 경제인 한 불황은 삶에 지울 수 없는 큰 흔적을 남깁니다. 세번의 불황이 내 인생에 남긴 흔적, 무엇일까요?

요즘으로 말하면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던 때는 2002년입니다. 기업 보다는 사회에 방점을 두었던 때가 이 때로부터 5년입니다. 2년을 고민하다가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기업으로 출발하려고 했던 때는 97년입니다. 정확히 두주일 후 YS는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합니다.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바뀌는 IMF 구제금융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사회를 바꿀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IMF구제 금융과 진짜 창업은 궤를 같이 합니다. 시련이 밀려 올 때 시작하였으니 위기관리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몇 개월후 인터넷버블이 IMF위기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위기를 위기답게 헤처가서 경쟁력을 키우기도 전에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거품이 거품인 줄 모르고, 98년부터 시작한 거품은 10년에 걸친 거대한 버블의 시대, 시작이었습니다. 첫번째 불황은 저에게 경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영자를 도와서 전략기획만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영업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헛된 꿈만 키웠습니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격이었습니다. 위기를 이기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지 못하고 위기의 맛만 보았습니다.

두번째 불황은 첫번째 불황이 남긴 흔적위에서 맞았습니다. 첫번째 불황이후 회사의 대표이사로 나섰습니다. 동업을 버리고 독자경영으로 바꾸었습니다. IMF를 이겼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거품속에서 일확천금이 가능하다는 망상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투자도 유치하고 M&A도 하려고 했습니다. 실적은 멈추었고 숫자는 나빠지지만 투자는 계속 하였습니다. 그래도 증권산업이 호황이라 버틸 수 있었습니다. 2005년부터 여의도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IT투자가 줄었습니다. 거품때문에 늘어난 기업들사이에 출혈경쟁이 일어납니다. 저가라도 수주를 하면 살아남았고 경쟁에서 밀려 수주를 못하면 망해야 하는 처절한 적자생존만이 남았습니다. 이 때 저는 한계기업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투자인 FX를 하면 기사회생을 할 수 있다고 계속 투자를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길었고 힘들었던 3년이었습니다. 벌레만 하루살이가 아닙니다. 기업도 하루살이입니다. 저는 더 버틸 힘이 있었지만 난파선에 남았던 승무원들은 더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문을 닫고 얼마 후 난판선을 떠난 승무원들이 가져간 FX에서 잭팟이 터졌습니다. 인생이 재미있죠? 첫번째 불황이 남긴 위기 자신감이 불러온 진짜 위기였습니다. 위기의 출발은 밖이지만 위기는 내부에서 터집니다. 돈을 둘러싼 쩐의 전쟁으로 처절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습니다. 버릴 때를 알지 못하는 기업가는 남에 의해 버림을 받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빚만 남은 채 쓸쓸히 본가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번째 불황은 2008년 금융위기입니다. 금융위기가 신용위기로 이어지고 다시 실물 불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전세계적이고 지속적인 불황이면서 가장 강력합니다. 돌파구가 없는 불황입니다. 위기가 불황으로 넘어가기 전, 저는 새로운 위기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이후 몇 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정하였습니다. 아내가 심하게 반대하였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첫번째 창업과 달리 시작하였습니다. 원칙은 딱 하나입니다. “절대로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사업자간 동업=파트너십으로 창업한다.” 이 원칙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파트너십에 의한 창업은 무척 지루합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성과가 당장 나오지도 않습니다. 서로에 대한 인내를 가져야 하고 결과에 조급하면 아니됩니다. 세번째 불황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두번째 창업은 3년차에 접어들었고 서비스를 막 시작한 상태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릅니다. 다만 첫번째 불황과 두번째 불황이 남긴 교훈을 잊지 말고 세번째 불황을 이겨내려고 합니다.

2.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물어봅니다.

“사업이 어떠세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회사를 나올 때 빵으로 시작해서 수입이 1원이라도 있으니 좋습니다.(^^)”
“남들이 힘들 때 나만 잘 나가면 안됩니다. 같이 힘들어야죠!(^^)”

편하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불황이 두번째 창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무엇을 남길지 모릅니다. 몇 년이 지나면 조금씩 흔적이 보이겠죠. 희망의 흔적이길 매일 기도합니다.

어디나 할 것 없이 주변을 보면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인원 조정은 기본이고 사업도 구조조정을 합니다. SI가 아닌 수익모델을 찾고 현금을 중요시 하는 경영을 합니다. 인터넷 버블 때 너도나도 SI로 창업을 하던 것과 다른 모습입니다. 성장을 논할 때가 아닙니다. 생존을 해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뜻은 생존에 머무르지 말고 남을 이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일본을 평합니다. 엔고 시절동안 일본 중소기업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가격 경쟁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품질은 높히면서 가격을 낮추는 능력, 무척 힘듭니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값을 받자”고 하지만 소프트웨어산업 또한 경제의 한 부분이므로 불황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매비용이 적으면 적은 대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개발자가 더 일하고 개발자가 더 일한 만큼 임금을 가져가지 않아서 얻는 경쟁력은 경쟁력이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개선하기 위해 매일 관련한 자료를 읽습니다. 배울 것은 배우고 익힙니다. 소비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끊임없는 개선이 없는 제품과 서비스, 경쟁에서 뒤처집니다. 파트너십으로 만든 제품과 서비스이지만 고객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품질만 중요합니다. 품질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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