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
약속을 몸으로 보여주신 지난 마흔 한해.
시간이 많이 흐르더라도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이고 노동자의 어머니로 기억될 겁니다.
부디 하늘에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아들을 떠나 보낸 후 어머니의 삶속에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지우기 힘들었을 듯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전태일’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를 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낳은 혈육이라고 하더라도 마흔 한해동안 똑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죽은 전태일의 정신을 살아 남은 어머니를 통해 보았는지 모릅니다.
경향신문이 2009년 중요한 기획을 하였습니다. 이소선선생님의 팔십 인생을 회고하고 글로 남기는 작업이었습니다.
마지막글에 올라왔던 한 대목입니다.
1000일을 이소선 곁에 있으며 느낀 건 이소선의 외로움을 누구도 달래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들 전태일을 먼저 보낸 이소선에게는 가슴 한 귀퉁이에 그 누구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다. 이소선은 자신이 살고 있는 게 아니라고 가끔 말한다. 매우 사랑했던 전태일과의 약속, 바로 그 약속이 이소선을 살아 있게 한 것이다.
이소선 삶의 잣대는 자신이 아니라 전태일이었다. 이건 이소선 개인만의 기준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도 전태일의 잣대로 이소선을 말한다. 아무리 대범하고 담대한 이소선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들이대는 전태일의 잣대 앞에서는 입을 다물곤 한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 여든이 넘은 이소선은 그 잣대로 아직도 회초리를 맞고 있다. 이제 이소선이 이소선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이 아닌 그냥 이소선으로, 우리의 어머니로 이소선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