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山不辭土壤

1.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면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김정훈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 통과를 눈 앞에 둔 때였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었습니다.

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찾아보니 사기 이사열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 진시황제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기 이전에 한(韓)나라에서는 수공(水工)인 정국(鄭國)을 진(秦)나라에 입국시켜 대규모 운하를 파게 해서 겉으로는 진의 국력을 신장시키는 척하면서 과도한 비용을 소모케 해 진나라 국고를 축나도록 했다.그런데 얼마 안 가 그 내막이 밝혀졌고 진나라 대신들과 왕실 일족은 이를 기화로 그동안 자신들의 특권을 잠식해 왔다는 이유로 꺼려했던 타국인 관료들을 배척하기 위해 왕에게 진언했다.

“제후국에서 와 진나라를 섬기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자기 나라를 위해 진의 군신(君臣)을 이간시킬 뿐이니 이 기회에 일체의 타국인을 추방하심이 가한 줄로 아룁니다.”

진왕(황제가 되기 이전의 진시황제)도 그렇게 여겼다. 그리고 추방할 인물에는 이사(李斯)도 포함되었다. 자신까지 포함한 타국인들을 추방하려는 축객령이 선포되자 이사는 왕에게 타국인 배척의 부당성을 상소했는데 그 내용은 대강 이렇다.

“옛날 진나라 왕들도 여러 타국에서 훌륭한 인재를 초빙하여 국력을 부강하게 했으며 지금 진나라 왕실에 비치되어 있는 수많은 진귀한 물품도 대부분이 외국산입니다.태산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저렇게 커졌으며 하해(河海)는 한 줄기의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으므로 저렇게 깊어진 것입니다(是以太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그런데 지금 진에서는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서 다른 제후국이 공업(功業)을 세우도록 하며 천하의 인사들을 쫓아내고 타국인을 못들어오게 하니 이는 이른 바 `도둑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양식을 공급하는 격’입니다.이러고서야 국가를 위태롭지 않게 하려 해도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이사의 이 상소문을 읽은 왕은 타국인 추방령을 철회하고 이사의 관직도 복직시켰으며 이사의 정책을 채용하게 되었다.

2.
당파 보다는 통합을 내세운 지도자의 덕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도 보입니다. 아니면 소박하게 ‘티끌모아 태산’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모든 물은 하해이고, 모든 산은 태산이어야 할까요? 뜻의 넓이와 깊이로 뜻의 가치를 논할 수 없습니다. 하해나 태산을 이룰 수 없더라도, 아니 하해와 태산이 될 생각이 없는 인생이라도 한사람의 인생은 소중합니다.

그런데 위 문장이 모 광고에 나왔다는 걸 어떤이가 알려주었습니다. 황하 광고용으로 쓴 문구이지만.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